사진이야기 53

생애 처음 경험하는 삼천포창선대교에서의 새해 해돋이

벌써 두달이 되어가는 시점에 올리는 새해 해돋이 사진..... 그땐 분명히 바로 블로깅 하리라 맘먹었는데.....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조금 부지런해져보자 이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닥쳐 온 시련 아닌 시련이 그런 나의 맘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어설픈 핑계만 하게 된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수줍게 떠있는 달과 그 옆에서 어설픈 빛을 뽐내는 가로등. 참 아름다운 굴곡을 만들어주는 다리. 우리내 머리속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는 직선의 다리때문에 항상 이곳 삼천포대교의 곡선을 볼때마다 신선함을 주는 듯하다. 서서히 해가 떠오름을 알리는 푸르른 새벽기운 여명 붉은 기운과 겨울 차디찬 새벽기운의 푸르름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로운 색감. 곧 새해가 밝아옴을 알리듯 그렇게 태양은 서서히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광할한 공간속 갈대와 석양이 아름다운 순천만

명승 : 제41호 순천만(順天灣) 수량/면적 : 3,015,859㎡(지정구역)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안풍동 1176번지 등 순천만은 남해안 지역에 발달한 연안습지 중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하며, 갯벌에 펼쳐지는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 S자형 수로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안생태경관을 보여주는 경승지이다. 넓은 갯벌에는 갯지렁이류와 각종 게류, 조개류 등 갯벌 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먹황새, 노랑부리저어새를 비롯한 흰목물떼새, 방울새, 개개비, 검은머리물떼새 등 11종의 국제 희귀조류와 200여종의 조류가 이곳을 찾는 등 생물학적 가치가 크다. 특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철새가 떼 지어 날아오르는 광경이 장관을 이루어 2006년에는 한국관광공사 최우수 경관 감상형지로 선정되..

무작정 떠나 본 지리산 중산리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지리산신령으로 여겨져 왔던 성모상이 바라보는 곳은 풍년이 들고 만사가 형통한다 하여 여러 마을로부터 수난을 겪어오면서 한때는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기도 했으나 천왕사 혜범스님에 의해 발굴돼 지금은 천왕봉이 아닌 천왕봉 바아래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현재 중산리마을 앞에는 새로 복원된 성모마고상이 세워져 있으며 지금도 기도를 드리는 치성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산리 마을에서 한시간여를 걸으면 옛날 신선이 버리고 갔다는 신선너덜지대 아래로 경남 자연 학습원이 있어 볼거리 또한 많다. 가족과 함께 산행하며 견학하는 것도 좋으며 중산리에서 자연학습원을 잇는 순두류계곡 옆으로 난 숲길은 이 세상이 아닌 별천지라 싶을 정도로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 깊은 골..

남해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하는 보리암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1901년과 1954년에 중수하였고, 196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

아름다운 색으로 단장한 가을단풍 속 백양사

백암사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北下面) 약수리(藥水里) 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절.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40여 개의 사찰을 관할한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고려시대인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당시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염불을 하자 흰 양들이 몰려오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보고 사찰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중건을 거쳤다. 사찰의 주요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極樂殿: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만암(曼庵) 스님이 주지로 ..

개인적으로 아쉬움만 남은 2010 부산불꽃축제

누가 그랬던가 사진찍는 사람은 부지런해야한다고...... 하지만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우선 첫 느낌을 느끼고자 진주를 떠나 겨우 턱걸이로 도착한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장장 5시간에 걸쳐 도착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삼각대도 제대로 설치 못하고..... 하긴 그 시간에 가서 삼각대를 올바른 위치에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몰랐던것은 아니지만.... 결국 사진 찍는 포기를 하고 동영상으로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는... 55분간 펼쳐진 불꽃의 향연은 여느 불꽃쇼와는 확실하게 차별화 된 느낌이었다. 광안리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사이에 띄어진 배위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은 보는 내내 와~~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는... 한가지 아쉬움은 밀물때 축제를 진행하다 보니 관람장소와 바다의 간..

아름답고 신비한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높이는 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으며, 동봉과 서봉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인 탓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공원 입구에서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동봉은 오를 수 없다.또 계절에 따라 ..

확트인 자연경관이 좋은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자연적인 생태계와 국제적 희귀조류의 월동지로 각광받고 자취를 감춘 해안하구의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어 있는 곳이 순천만이다. 2003년 12월에 해양수산부로부터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004년에는 동북아 두루미 보호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하였으며, 2006. 01. 20일에는 연안습지로는 전국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고, 특히 순천만은 조류와 갯벌 또한 흑두루미의 월동지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갈대가 고밀도로 단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갈대 군락은 새들의 서식환경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은신처와 먹이를 제공하고 자연정화의 역할을 하기도 함 아름다운 순천만의 S자형 수로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 2000년 7월에 남해안 관..

팔만대장경이라는 우수한 문화재를 지닌 합천 해인사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곹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

신선이 내린 바위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사 - 전남 순천시 승주읍(昇州邑) 죽학리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