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마을 5

통영의 동쪽 벼랑에 위치한 작은 마을 - 동피랑마을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마을로,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피랑마을에 오르면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

‘땡큐 동피랑’ 동피랑 제3회 벽화공모전 우수작 선정

5월14일, 푸른통영21 동피랑특위 위원들과 동피랑 주민협의회가 3차 벽화전 심사에 나섰습니다. 70점이 넘는 그림을 모두 둘러보고, 심사기준은 미학적 관점보다는 '땡큐 동피랑'의 취지에 맞는가, 마을만들기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는가, 방문객들과 주민들의 만족도는 충족되는가,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둘러보았다는군요. 이번에는 예산부족으로 1개팀에 대해서 대상(상금 100만원)을 드리기로 하였는데 모아진 결과는 공동수상으로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는군요. 스위치팀(서울)의 '천사의 날개', 울라봉팀(통영)의 '등대'가 그 대상이라고 합니다.

‘땡큐 동피랑’ 제3회 벽화전 전국에서 70개팀 170여명 참여

세 번째 열리는 동피랑 벽화전 참여 신청이 마감되었다. 강원도를 비롯한 전북, 서울, 부산, 대구, 진주 등 전국에서 참여 열기가 뜨거웠고 마감을 지난 시각에도 참여 가능여부를 묻는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통영의 작가들도 대거 참석율을 보여 동피랑이 통영시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공간임을 확인했다. 참여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주로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고, 지역에서는 경상대학교 동아리 에코캠퍼스팀, 통고와 통여고 동아리팀도 참가를 신청했다. 가장 멀리서 오는 팀은 강원도 강릉과 전북 익산팀. 외에도 서울과 안양, 울주와 울산에서도 참가를 신청했다. 2인 이상의 팀을 이루어서 참가하는데 팀별 이름도 재치와 재미가 묻어난다. 소중한 추억팀, 구구단, 울라봉, 고래의 꿈, 미륵산아래, F5, 등록금의 ..

꿈과 추억이 있는 통영의 동피랑마을

통영의 대표적 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작은 마을 동피랑마을. '동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하는 통영의 사투리.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동피랑마을. 그리고 담벼락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눈에 띄는 곳.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에 이순신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

동피랑 블루스 - 제2회 동피랑 골목벽화전

 4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동피랑에서 두 번째 벽화전이 열린다. 지난 2008년 1차 동피랑 골목벽화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벽화전의 주제는 ‘동피랑 블루스’ - 서민들의 삶과 애환, 자유와 희망을 붓의 선율로 표현해보자는 의미이다. 1차 벽화전 당시 19개팀이 참여한데 반해 2차 벽화 공모전에는 전국에서 41개팀이 참가신청을 해 왔다. 2차 동피랑 벽화전 공모에는 총 41개팀이 참여 신청했으며 선착순으로 마감했다. 이번 ‘동피랑 블루스’ 벽화전 참가자들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인천, 서울, 강원도, 광주, 대구, 부산, 창원, 마산, 고성, 거제등 전국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또한 동피랑 1차 벽화전에 참여했던 3팀이 다시 참여 신청을 하기도 하였고, 통영 미술인들의 참여가 전혀 없었..